밀란쿤데라가 난봉꾼인지 아닌지 나는 모른다.
다만 그가 심각한 사람이기 보다는 유희를 아는
놀이의 인간-호모루덴스-라는 것은 안다.
의사소통의 평등을 바라는 것은 중증의 피터팬병을 앓는 소년취향이다.
의사소통은 관계를 생산하는 필요충분조건으로
양자는 전혀 다른 카테고리를 점유하면서도
태생부터 동거할 유전자를 지녔다.
언불진의(言不盡意)의 법칙-차라리 '진리'라고 하고싶다-에 따라
누군가는 자유롭고 누군가는 폐쇄한다.
이는 기호사용의 '자의성'이 보여주는 오래 된 현상인데
사용자로서 시니피앙을 다루는당사자의 한계를 보여준다.
시니피에의 자의성도 여기에 가세함으로써 이런 한계는 더욱
선명해 진다.
의사소통은 '서로 다른 자'와의 소통이라
'다름'과 '차이'를 아는 자가사용 할 자격을 갖는다.
그러나 강제성이 전혀 없어서 오용과 남용, 미숙을 막을 수가 없다.
의사소통의 계기 또는 본질이란 것도다름과 차이를 전제하기는 마찬가지 이며
이러한 전제-인식하는 것-가 없다면
의사소통도 관계도 무의미하다.
관계의 성립-요소라고 해도-은 어떤 것도 내적 필연성이란 없다.
처음과 끝이 자의성이며 관계를 원하는 낯선 자들의
'관습'에 의지해야만 한다.
나는 접속한다. 고로 존재한다?
존재방식의 다양성도 멋진 일이다.
아무렴,맘대로 하세요.
허나, 내 결단코
그 가벼움에 침을 벹아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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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모루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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