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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nolog

이것은 괴로움인가 기쁨인가

by signifiant 2011. 1. 27.


1.

내 그처럼 아껴 가까이 가기를 두려워했던

어린 나무들이 얼어 쓰러졌을 때 나는 그들을

뽑으러 나갔노라. 그날 하늘에선 갑자기 눈이

그쳐 머리 위론 이상히 희고 환한 구름들이

달려가고, 갑자기 오는 망서림, 허나 뒤를 돌

아보고 싶지 않은 목, 오 들을 이 없는 告白.

나는 갔었다, 그 후에도 몇번인가 그 어린 나

무들의 자리로.

그러던 어느날 누가 내 젊음에서 날 부르는

소리를 들었노라. 나즉히 나즉히 아직 취하지

않은 술집에서 불러내는 소리를.

날 부르는 , 어지러운 꿈마다 희부연한

빛 속에서 만나는 , 나와 씨름할 때가 되

었는가. 네 나를 꼭 이겨야겠거든 信號를 하

여다오. 눈물 담긴 얼굴을 보여다오. 내 조용

히 쓰러져 주마.

2.

갑자기 많은 눈이 내려 잘 걸을 수 없는날

나는 너를 부르리

그리고 닫힌 문 밖에

오래 너를 세워두리

희부연한 어둠 속에 너의 머리 속에

소리없이 바람은 불고

칼로 불을 베는 사내를 보게 해 주리

타는 불 머리의 많은 막막함

흩어진 머리칼 아래 無心한 얼굴

혼자 있는 사나이의 靑春

그물 속의 불빛 그물 속의 불빛

뒤를 보려므나

그 사이에 나는 웃으리, 금간 얼음장에 희

부연한 빛으로,

그물 속의 불빛 그물 속의 불빛

나는 너를 보리.

3.

나무들이 요란히 흔들리는 가운데 겨울 햇

빛은 떨어지며 너를 이끌어 들인다, 얼은 들

판을 바라보고 앉아 있는 나에게로. 잘 왔다

친구여, 내 알려줄 것이 있다. 저 캄캄해 오

는 들판을 바라보라. 들판을 바라보는 그대로

너를 나에게 오게 하는 법을 배웠느니라.

이제 무엇을 말하겠는가. 혹은 다시 보겠는

. 네 허전히 보낸 나날의 表情없는 얼굴을.

네 그처럼 처음을 사랑했던 꿈들을.

보여라, 살고 싶은 얼굴을. 보아라, 어지러

운 꿈의 마지막을. 내려서라, 들판으로, 저 바

람받는 地平으로.

이것은 괴로움인가 기쁨인가/ 황동규

*

사진: 권순평(1965-2010)작/ '나의 비밀의 정원' 중

예술의 전당에서 전시본을 촬영.


당신이 그곳에 있다는 것과

내가 이곳에 있다는 것을 두고 벌이던

상념들은, 이제는 그저 불쌍하다

나는 이제 엉뚱한 곳으로 떠난다.

대포에 맞서 투석기를 끌어야 하는 병졸에게

비장한 각오는 자기기만일 뿐

절대불리의 전장에서 가장 절실한 것은

오장육부를 모조리 들어내고

미리 죽이고 죽는 것이다.

잘 있거라

평안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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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시 화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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